존경받는 부자와 당당한 서민이 사는 대한민국

존경받는 부자와 당당한 서민이 사는 대한민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는 존경받아야 한다. 더욱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민은 당당해야 한다. 부자라서 존경받는 것이 아니라, 존경받을 만한 부자여야 한다. 서민이라서 당당한 것이 아니라 당당한 서민이 되어야 한다.

존경받는 부자

한국의 부자는 하여 존경받지 못하는가? 권력에 아부하여, 혹은 탈법과 편법으로, 아니면 탈세로 부자가 되는 비율이 무지 높기 때문이다. 정당한 방법과 노력이 아닌 온갖 특권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사뭇 많기 때문이다. 땀방울 혼자 흘리지 않고 부자가 되니 욕할 수밖에 없다.

전두환은 29만 가망 밖에 없다지만 골프를 치러 다니고 큰 저택에 산다. 부정적인 한국 부자의 단면이다. 생계를 걱정하는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전관예우로 테두리 달에 1억 이상을 받는 변호사도 있다. 평생을 벌어도 서울에 아파트 경계 입때껏 마련하기 힘든 이들이 있는가 하면, 3살짜리가 강남에 대형 아파트를 소유한다. 한국사회의 불균형을 말없이 보여준다.

존경받는 부자가 많아져야 한다. 재난 지원금에서 알 수 있듯이, 부자가 낸 세금으로 나라는 더 큰 일을 할 복운 있다. 그럼에도 새 발의 피를 세금으로 생색내며, 대부분의 소득을 개인 착복하는 이들이 나라를 망친다. 그들도 부자다.

한마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필요하다. 부자는 사회에 의무를 갖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많은 세금은 일종의 고성대명 유지비인 것이다. 부자의 품격이 필요하단 말이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부자세로 자신의 세금을 인상하라고 매개 못할망정, 종부세 정도는 웃으면서 낼 최소한 품격 정도는 갖춰야 한다. 끈없는마스크 몇 억의 소득에 근근 백여만 원을 세금으로 낸다고 울부짖는 보수언론의 보도를 보노라면 부자 욕먹으라고 떠드는 듯하다. 그런 강남의 수준으로 인식되니 태영호의 강남공화국이란 조소를 받는 것이다.

당당한 서민

서민은 당당해야 한다. 당위성으로 하는 말은 도움이 안식구 된다. 당당해지려면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득권이 유일하게 서민에게 재 숙이는 순간이 있다. 옳이 선거다. 서민이 당당해지려면 투표를 잘해야 하는 것이다.

재벌, 기업가, 공무원, 판검사, 변호사, 대기업 임원, 기자, 교원 등등 댁 누구도 서민에게 머리 숙이지 않는다. 반면 그들이 출마하면 고개를 세밀히 숙인다. 심지어 무릎을 꿇기도 한다. 얼른 선거가 그들, 바로 기득권의 치명적 약점이다. 투표만 잘하면 기득권은 서민을 무서워한다. 저절로 당당해지는 것이다.

1990년도에 중국 베이징에는 세속 최대의 맥도널드 매장이 있었다. 무론 최대한도 매출액을 자랑했다. 바꿔 말하면 맥도널드 몸자세 조사에서 세계에서 바깥주인 맛없는 곳이 곧 베이징 지점이었다. 문제는 고객들이 아주 착했기 때문이다. 패드가 식어도, 야채가 부실해도, 빵이 딱딱해도 항의가 없으니 품질이 엉망이었던 것이다. 순한 소비자가 품질을 떨어뜨린 것이다.

서민이 당당해지려면 서민이 무섭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평소에도 항의해야 하나, 선거가 바깥사람 중요한 순간이다. 선거는 모든 기득권을 절정 숙이게 할 호운 있다. 일본을 보라. 투표를 옳이 못하니 국민을 우습게 아는가! 아베의 마스크처럼 했다면 한국에서는 최소한 책임자가 면책되거나 국정조사 정도는 벌어졌을 사안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내내 넘어간다. 비리혐의 있는데도 말이다. 시중 개혁을 원한다면 투표를 잘해야 하는 것이다. 선거는 부자가 아닌 서민을 위한 장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

대한민국은 존경받는 부자와 당당한 서민이 사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건 진보든 보수든 무관히 추구해야 할 목표다. 다시 말하지만 부자라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받을 만한 부자가 많아야 한다. 서민이라서 당당한 것이 아니라, 당당할 길운 있는 서민이 되어야 한다.

존경받는 부자와 당당한 서민이 사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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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life